아름다움을 부적으로

봄날, 우리는 크레타 섬 스파키아 지방의 산길을 걸었다.

아스키푸 고원에서 니아토스 고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도중에 우리는 타브리 평원을 지났는데, 봄날의 타브리 평원은 글자 그대로 꽃바다였다. 평원을 가득 메운 수많은 데이지가 바람결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꽃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아내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담는 것을 나는 바라보았다.

문득 나무 그늘로 시선을 돌렸을 때,
거기, 거짓말처럼 크레타 작약이 피어 있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꽃을 처음 만났다.

봄날의 크레타 산속에서 피었다 지는 이 꽃을 오래전 스파키아 사람들은 ‘가짜’라고 불렀다. 진짜라고는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워서.

별이 많은 밤이면 사람들은 이 꽃을 어깨에 달았다고 한다. 악마의 눈과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별빛이 깃든 흰 작약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별밤에 꽃을 찾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그들의 마음을 거닐어본다.

아름다움을 부적으로 삼던 오래된 마음이 우리 안에 다시 피어나기를.

2026.
주용

크레타 작약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