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와 공포 (크레타 스피나롱가)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크노소스 왕궁이고, 두 번째는 크노소스 왕궁에서 발굴한 유물을 볼 수 있는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이다. 그다음은 어딜까? 그곳은 스피나롱가 섬이다. 크레타섬 북쪽 앞바다에 있는 섬. 느릿한 걸음으로 한두 시간이면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이다. 그 섬엔 그럴듯한 해수욕장도 없고, 계곡도 없고, 호텔이나 식당도 없고, 심지어 그 섬에 사는 사람도 한 명 없다. 그 섬에는 오직, 한때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흔적과 적막뿐이다.

지난 9월 스피나롱가 섬에 다녀왔다. 석 달 가까이 동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지내는 생활을 하다가 모처럼 바람을 쐬러 나간 것이었다. 크레타섬 플라카 마을에서 출발한 작은 배가 스피나롱가섬 선착장에 엉덩이를 대기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마음 먹으면 헤엄쳐 건널 수도 있을 정도로 지척에 있다. 하지만, 한때 이 섬에 들어와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한 번도 이 섬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 작은 섬 안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잠들었다. 그들은 나환자 혹은 문둥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어렸을 적 ‘주말의 명화’인지 ‘신년 특선 영화’인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벤허>를 보았다. 영화를 본 지가 아주 오래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광기 어린 질주가 펼쳐지는 전차 경주 장면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내게 남긴 것은, 유다가 전차 경주에서 승리한 후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간 장면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유다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다른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섭고 처참하게 그려졌던지,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숨 막히는 공기에 어린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숨을 쉬면 병을 옮기라도 할까 봐.

대학 때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갔다. 그런 곳에 가도 괜찮은 거냐고 감염되면 어떡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한센병은 생각하는 것처럼 무서운 병이 아니라고, 건강한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감염될 일이 없을뿐더러 소록도 사람들은 이미 다들 치료를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도 없다고, 감염되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말해주었다. 짐짓 담담하게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켰지만, 소록도로 떠나기 전날 인터넷을 뒤적여 한센병에 대한 정보들을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번 더 자신을 안심시켜야 했다. 각인된 공포는 쉽사리 걷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록도에 도착한 우리는 조를 나눠 일했다. 힘 좋은 친구들은 노인들이 하기에 힘에 부치는 크고 작은 마을 일들을 해결했고,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은 고장 난 물건이나 건물을 손보았다. 골목 청소를 한 친구들도 있었고, 집안일을 거든 친구들도 있었다. 제일 인기가 많은 조는, 내 친구 덕희가 활약했던 뻥튀기 조였다. 뻥튀기를 튀겨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은 것이다. 뻥이요- 뻥- 뻥이 터질 때마다 까르르 깔깔 웃음이 터졌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내가 맡았던 일은 ‘대화’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말재주라고는 없는 내가 말벗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게 듣는 재주가 조금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들을 들었다. 손가락 없이 뭉툭한 그들의 손등을 가만가만 토닥이면서.

그 후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지금도 소록도에는 한센인들이 살고 있다. 더는 누가 그들을 강제로 그곳에 격리시키지도 않고 그들의 병도 이미 오래전에 완치되었지만, 그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대신 섬에 남았다. 오랜 세월 한센인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세상의 무지와 무관심과 차별은, 세상 사람들이 한센병에 대해 가진 막연한 공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처참한 공포였다. 무지로 인한 공포는 지식으로 메꿔질 수 있지만, 격리로 인한 상처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지난가을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모처럼 바람 쐬자고 나갔다가 발길이 닿은 곳이 스피나롱가 섬이었다. 예년이라면 관광객으로 북적였겠지만, 텅 비어 있었다. 쓸쓸하고 적막한 섬을 산책하면서, 한때 그곳에 격리되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앞에서 느꼈을 공포. 그 공포를 이겨내고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발휘해야 했을 그들의 용기를. 스피나롱가 섬에 격리되었던 한센인들은 1950년대 말에 모두 섬을 떠났다.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은 그럴 수 있었다.

스피나롱가
스피나롱가 섬에서 바깥을 바라본 풍경

2020년 온 세상 사람들이 온 세상에 격리되었다. 너무 늦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를 이렇게 격리시킨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공포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백신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정확한 사실 확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코로나 PCR 검사에 과학적 오류와 결함이 있고 그로 인해 많은 거짓 양성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확진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PCR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방역 조치들(확진자/접촉자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의무 착용)이 정당성을 잃는다. 유럽과 여러 나라에서는 대량 PCR 검사에 바탕한 방역 조치와 백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각국의 보건당국과 언론은 계속해서 우리 머릿속에 공포를 각인시키며 백신을 맞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무섭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토록 오랫동안 이토록 무력하게 온 세상이 정치적으로 증폭된 공포에 감염된 이 상황이 무섭다. 흩뿌연 안개처럼 퍼져있는 공포를 목격하면서 제대로 숨쉬기가 어렵다. 문틈을 틀어막아 보기도 하고 휘휘 손을 저어보기도 하지만, 무력함을 느낀다. 그래도 한 번 더, 손을 뻗어본다.

2020년 12월 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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